Arts+Design

디자인 간섭, : 책과 전자책 사이

Eunice_t-story 2010. 3. 24. 19:39
source: designdb.com
디자인 간섭, 
: 책과 전자책 사이
글 안젤라 라이셔(Angela Riechers)
그림 1. Alexandra DiCariano의 선반형 책장 © Alexandra DiCairano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미 디지털 책과 리더기의 사용이 얼마나 편리한 것인지 잘 알면서도 기존의 책이 우리에게 주는 따뜻하고도 친숙한 느낌이 떨어지기 때문에, 다소 공포스러워 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에 따른 결과로, 디지털 텍스트를 읽는 도구들의 스크린 인터페이스 디자인은 종종 종이에 인쇄된 출판물의 형식을 참고로 한다. 여기에는 종이 없이도 책을 계속 읽겠다는 강한 의지를 지닌 이들에게, 그 행위를 그래도 비슷하게 할 수 있게함으로써 격려를 보내려는 것 외에는 어떠한 다른 이유도 없다. 그리고 그 반대의 경우가 나타나기도 하는데, 역으로 아날로그가 디지털의 영역을 침범하는 사례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디자이너 알렉산드라 디카이라노(Alexandra DiCairano)가 디자인한 책장이 그것인데, 흥미롭게도 이 선반형 책장은 전자회로기판을 모티브로 한 것이다.(그림 1)
그림 2. 전자책을 책장 형태로 디스플레이해주는 모바일 어플리케이션 © theblogonthebookshelf.com 
이 동차적인 상황은 두 가지 형식 사이의 기묘한 혼성종을 낳기에 이르렀는데, 아이폰을 위한 책장이라든가(그림 2), 리더기 안의 전자책들을 이미지화하여, 서재에 진열된 형태로 디스플레이해주는 온라인 어플리케이션 등이 그 예시들이다. 전자책에 책장이 필요하다니, 당치도 않은 말이다.
그림 3. 어느 판타지물 매니아의 서재 : 세르비아 벨그레이드에 거주하는 요반 바실레빅(Jovan Vasiljevic) © Lookshelves.com
그럼 반대의 경우를 살펴 보자. 위의 사진은 전세계 여러 사람들이 자신들이 실제로 읽는, 실제의 책을 진열해 놓은, 실제의 책장 사진을 포스팅하는 블로그에서 따 온 서재의 사진이다. 디지털 매체로도 존재하는 ‘책’을 디지털 이미지로 만들어 현실 세계에서 이를 즐기고 있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그림 4. 구독자들은 뉴요커 지 온라인 사이트에서 지난 호 아카이브에 접근할 수 있다. 온라인 상의 뉴요커 지는 광고를 포함해 전체가 인쇄된 전통 잡지의 인터페이스를 그대로 사용한다. 
뉴요커(the New Yorker) 잡지 같은 저작물은 인쇄된 잡지를 연상시키는, 페이지를 넘기는 형태의 전자책 인터페이스를 유지한다. 이 방식은 때로 디지털적 책읽기에 오히려 방해가 되며, 더 이상 아무런 존재의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뉴요커 지를 포함한 몇몇 전자 잡지들은 이 인터페이스를 고수하면서 심지어 책장을 넘기는 소리까지 삽입한다.
그림 5-6. 무형의 콘텐츠(Formless Content)를 위한 도식(왼쪽)과 유형의 콘텐츠(Definite Content)의 도식, © Craig Mod
“아이패드 시대의 책(Books in the Age of the iPad)”이라는 제목의 포스트를 쓴 크레이그 모드(Craig Mod)는 콘텐츠를 두 가지, 무형의 콘텐츠(formless content)와 유형의 콘텐츠(definite content)로 구분한다. 전자는 인쇄매체나 모니터, 휴대용 기기 등에서 모두 수용이 가능하다. 반대로 후자는 그 내용과 형식이 명백하게 정해져 있는 것이어서, 그 의미 등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기 위해서는 레이아웃과 포맷의 역할이 중요해 지는 것이다. 
모드는 이렇게 말한다. “쉽게 설명하자면, 무형의 콘텐츠는 콘텐츠를 담는 그릇의 역할을 축소시킨다. 반대로, 유형의 콘텐츠는 그것을 캔버스(canvas)로서 포용한다. 무형의 콘텐츠는 대개의 경우 텍스트 만을 의미하고, 유형의 콘텐츠는 흔히 텍스트와 함께 이미지적인 요소를 그 부분으로 지닌다.” 
이 우아하고도 명쾌한 구분을 염두에 둔다면, 전자책을 기존의 책처럼, 반대로 전통적인 의미의 책을 전자책처럼 만들려고 하는 것은 꽤 쓸데없는 일이란 걸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휴대폰 카메라에서 나는 셔터음(휴대폰 카메라에는 셔터가 없다.)은 궁극적으로 도태될 것이다. 이는 사진을 찍을 때 나는 소리가 싫어서 기계식 카메라를 사용하지 않았던 사람에게 뿐만 아니라 일반적으로도 쓸모 없는 기능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여러 가지 형식의 각기 다른, 읽기 행위를 위한 매체들은 더 이상 다른 매체를 시각적으로 참고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점차로 각각의 매체들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기능하고, 개개의 디자인이 그 사실을 반영한 결과물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한꺼번에 커버해내려는 매체는 결국 너무나 정신분열증적인 잡종에 불과하다. 텍스트와 콘텐츠를 여러 가지 형태로 수용하고 경험하려는 사용자들에게 일말의 도움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안젤라 라이셔(Angela Riechers)
라이셔는 Rhode Island School of Design을 졸업하고 미국 하퍼스 매거진(Harper's Magazine)을 비롯, 다수의 잡지사에서 아트 디렉터로 활동하고 뉴욕 City College of New York, School of Visual Arts 등지에서 강의해 왔다. 대학원에서 디자인 비평을 전공하고, 현재는 디자인 옵저버(Design Observer), 아이가(AIGA) 등 유수의 온라인 디자인 저널에 활발한 기고 활동을 벌이고 있다.
artdeptnyc@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