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s+Design

영화/애니메이션의 프로덕션 디자인과 CG 파이프 라인의 유기성

Eunice_t-story 2010. 2. 2. 19:15
출처: 디자인 DB
글 민건엽

지난 14일 문화체육관광부가 컴퓨터그래픽 산업에 2013년까지 2000억 원의 예산을 투입해, 1조 1000억 원 규모의 시장으로 육성한다는 "CG 육성계획"을 발표했다. 국내 CG기술이 할리우드의 80% 수준을 넘어서며, 일부 기술은 더 뛰어나다는 분석, 판단 아래 내려진 정책이란다. 더군다나 3만 명 이상의 고용창출 효과도 있다니 불황 중 단비처럼 반가운 소식이다. 

기사보기 - CG산업 할리우드 급으로 키운다. 

미국의 영화업계에서 일하고 있는 본인은 한국의 어떤 일부 기술이 할리우드의 그것보다 뛰어나며, 80%의 수치가 어떻게 산출되었는지, 또 그에 버금가는 어떤 기술적 인프라를 지니고 있는지는 자세히 알지 못한다. 하지만 영화 소비자로서의 한국 국민의 관심과 배경지식이 그 어떤 나라보다 방대하고 뛰어나다는 사실은 미루어 짐작 할 수 있다. 영상혁명이라 일컬어지는 최근의 한 영화는 이미 1000만 관객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고, 평일 새벽 12시 아이맥스 상영관조차 예매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뿐만 아니라 "모션 캡쳐로 디지털 배우들의 연기가 자연스러워 졌다", "디자인이나 색감이 너무 특정게임하고 비슷하더라", "내용이 진부함이 볼거리로 인해 신선하게 해석되었다" 등의 반응은 놀랍게도 일반 관객들의 대화에서 흔하게 들을 수 있는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이제는 누구나 자신의 블로그에 디지털 영화에 관한 평을 올리며, 기본적인 특수효과 지식들은 주변에 널려있는 자료를 통해 섭렵한다. 이런 국민적 관심과 영화에 대한 애정을 생각해 볼 때, 정부의 "CG 육성계획"이 느닷없이 나타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제는 부연 설명조차 구태의연하게 느껴지는 CGI (Computer-generated imagery), 우리가 흔히 칭하는 “CG”는 영상매체의 특수효과를 위해 사용된, 컴퓨터로 구현된 이미지를 말한다. 거대 로봇부터 무너지는 도시까지, 이야기꾼들이 이 CG효과로 인해 표현의 무한한 자유를 얻게 된 것도 사실이지만, 역설적으로 이야기의 도움을 얻기 위해 만든 이미지에 치여 그 연출의 의도가 왜곡, 상실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는 내용을 압도하는 시각효과의 감상 자체만으로도 영화관람의 목적 중 하나가 되고 있다. 눈과 귀가 즐거운데 내용이 좀 진부한 들 어떠한가. 태어나서 처음 보는 이미지가 내 눈앞에 다가왔을 때 이성이 흐릿해 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 신세계를 경험하게 하는 것이야 말로 어쩌면 또 하나의 영화적 목적이자 성취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만큼 비주얼 자체가 영화의 중심에 자리잡고 성패를 좌우하다 보니, 때때로 성공적인 시각효과의 달성이 곧 영화의 완성도라는 등식이 성립하기도 한다. 이러한 트렌드가 아마 정부의 CG육성책의 배경에 있으리라 짐작되는데, 그렇다면 영화나 애니메이션 산업에서의 CG의 성공여부는 어떻게 결정될까.
그림 1. Dylan Cole, Matte Painting, © Newline Cinema 잘 그려진 매트페인팅 한장으로 실현된 상상의 공간은 더 강한 시각적 드라마를 관객에게 제공한다.
실사와 렌더 이미지의 매끄러운 융화나, 완성도 있는 모델링과 자연스러운 애니메이션도 중요하겠지만 무엇보다도 연출의 의도와 CG로 재현된 이미지들의 유기성이 성공적인 시각효과의 핵심이다. 주제와 벗어나는 이미지의 남발이나, 화려한 기술만을 자랑하는 영화가 얼마나 한심해 질 수 있는지 우리는 충분히 봐 오지 않았는가. 연출가의 의도에 적절히 부합하는 동시에, 그를 넘어서서 관객에게 시각적 만족감을 줄 수 있는, 넘치지는 않되 풍요로운 수위를 유지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리고 그 간극을 조율하고 연출과 이미지들의 유기성을 엮어 가는 작업의 시작이 프로덕션 디자인이다. 

통칭 프로덕션 디자이너(컨셉 디자이너, 비쥬얼 디벨롭먼트 아티스트라고도 불리며 회사의 규모, 프로젝트의 성격, 구조에 따라 명칭을 달리한다.)의 역할은 스크립트의 설정들을 시각화하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시나리오 작가 혹은 감독이 머릿속으로 상상한 것들을 밖으로 끄집어 내어서 디자인하고 완성된 그림을 그려서 CG 아티스트들에게 전달하는 일이다.

디자이너들은 연출가들의 생각과 의도를 읽고, 혹은 그들도 미처 찾아내지 못한 막연한 이미지를 그려내야 할 때도 있는데, 당연히 그 사람 머릿속에 들어가 보지 않은 이상 불가능 한 일이다. 그러나 오히려 작가/감독의 실체화되지 않은 상상과, 구체화 되어야 할 디자인의 모호한 간극이야 말로 프로덕션 디자이너에겐 놀이터이자 영감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모호한 아트 디렉션의 세트가 디자이너에게 주어졌다고 하자.
" 중세 유럽의 영향아래 있지만, 그 시대상과 양식을 딱히 꼬집어 말할 수 없는 타워"
" 주된 상황은 꼭대기 층에서 이뤄지고, 타워 안에서의 이동은 제한적이여야 한다."

주어진 전제 안에서 디자이너는 가장 적절한 절충안을 찾기 위해 아래와 같이 몇 가지 제안 디자인을 했다.
그림 2. Ken Min, Design pitch board for Rapunzel 중 일부, © Ken Min

고딕양식과 앙코르 와트의 라인을 섞어보기도 했고, 여성 몸의 굴곡과 아시안 파고다를 접목시켜 새로운 국적불명의 미감을 보여주기도 했다. 또한 샷의 변화와 기능에 따른 참고자료(reference)도 제시하여, 어떤 사고과정을 통해 이러한 결론에 도달 했는지를 설명한다.

그 과정에서 감독은 자신도 미처 깨닫지 못한 디자이너의 그림에 연출의 영감을 받기도 하며, 머리 속에 고정되어 있던 이미지가 디자이너를 통해 설득, 변형되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그러한 과정들이 쌓여 영화 전체의 미술/프로덕션 디자인이 실체화 되어가고, 그 디자인이 CG 세트 아티스트(set artist)에게 넘어가는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을 감화시키는 영화예술의 시각화는 마찬가지로 하나의 영감에서 시작한다. 한 장의 그림에서 수많은 이야기와 가능성이 가지처럼 뻗어나가며, 그 이미지들은 주인공의 모습이나 그가 살아가는 도시, 때로는 우주의 모습으로 구체화 된다. CG로 구현해야 하는 대상 앞에는 반드시 이야기를 이해하고 담아내는 디자인이 설계도로서 존재해야 함이 당연해 지는 이유이다.

CG에 관한 오해들

‘연출 - 프로덕션 디자인 - CG 아티스트’의 파이프 라인은 그야말로 업계표준이자, 필연적인 제작과정이다. 하지만 영화의 시각효과를 이야기 할 때 우리는 종종 CG만을 따로 떼어놓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CG티가 너무 나더라” 혹은 “CG는 그래도 볼만 했다", "CG 산업을 할리우드급으로 키운다".

앞서 말했듯이 시각효과는 영화라는 전체 콘텐츠 안에서 이해되고, 제작되고, 감상되는 성질의 것이다. 물론 일반 관객들의 관점은 그들의 자유이지만, 적어도 업계종사자나 디자이너, 산업을 기획, 육성하는 견지에서는 그래야 한다.

문화부가 추진중인 실무 인력 양성, 고가장비 대여, 또는 콘텐츠산업진흥위원회 등의 계획 속에 CG에 선행하는 프로덕션 디자인의 이해와 역할 역시 포함되어 있기를 바란다. 그렇다면 CG산업을 집중육성하기 위해서는 전반적 미술교육, 영화미술산업의 구조 개선에도 역시 지원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그림 3. Ken Min, Design pitch board for FishTown, © Ken Min, 한장의 그림이 전체 영화의 미술을 결정짓는 영감이 되기도 한다.

민건엽
홍익대학교 예술학, 회화과 졸업, Academy of art San Francisco 일러스트레이션 석사.
스타워즈를 비롯, 다수의 TV Show와 10개 이상의 Game title에서 Concept Artist로 활동.
현재 Lucas Film에서 Visual Development Artist/Digital Painter로 일하고 있다.